애니메이션 감독 시그네 바우만은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 <내 주머니 속의 돌들>에서 할머니를 비롯해 오래 전부터 자기 집안의 여러 여성들을 괴롭혀온 우울증과 광기에 대해 솔직하고 용기 있게 다루고 있다. 한동안 정신병으로 여겨졌기에 당사자들이 침묵해왔던 우울증에 대해 자전적 시각에서 접근한 이 영화는, 감독 말에 따르면 미스터리와 용서에 관한 작품이라고 한다.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와 시각적 메타포들이 감성을 자극하며, 라트비아 출신 감독답게 유서 깊은 동구권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미학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놀라운 작품을 완성시켰다.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라트비아의 근현대사가 어우러진 초중반부의 이국적인 스타일, 그리고 곳곳의 뒤틀린 유머가 특별한 개성으로 다가온다. 집안의 내력인 유전적 광기와 싸우는 예술가의 가슴 뭉클한 이 이야기는 삶의 여정에서 누구라도 한번쯤 겪었을 마음의 아픔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, 특히 인생의 무게 속에서도 지속되는 투쟁의 의지를 상징하는‘ 주머니 속 돌들’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.
(이수원_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)